학생부 전형 자체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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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생부 전형 폐지를 주장하는 글( https://orbi.kr/0008783693 )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쓴 글에는 다소 학교 내부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학생부 전형 자체로서의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논하고자 합니다.
1. 불균등한 지표 사용
학생부 전형의 큰 축을 담당하는 평가 요소 중 하나는 내신 성적입니다. 학생부 교과 전형은 주로 내신성적으로만 선발하며, 학생부 종합 전형은 비교과 영역을 고려하지만 결국 내신 성적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내신 성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신 성적은 해당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을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하지요. A 고등학교의 a 학생과 B 고등학교의 b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a와 b는 각각 A, B에서 '각각 따로' 시험을 보게 되고 그 점수에 따라 등급을 매깁니다. 그렇다면 A 고등학교에서 백분위 90인 a와 B 고등학교에서 백분위 85인 b 중 누가 더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알 수 없다' 입니다.
a가 A 학교 내에서 어느정도인지, b가 B 학교 내에서 어느정도인지만 알 수 있을 뿐, a와 b 둘 중 누가 더 실력이 있는 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가 더 실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a가 B의 시험을, b가 A의 시험을 응시해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최소한 어느 한 쪽 학생이 다른 쪽 학생 학교의 시험을 함께 응시해서 같이 성적을 매겨야 합니다.
만약 두 시험만을 놓고 비교를 한다면 응시자들의 표본 수준이 어떤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수능이나 모의고사 성적과 같은 통일된 지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수능이나 모의고사 실력과 내신시험 실력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서 보정 자체가 불가능하고, 일치한다고 무리하게 가정해도 전국의 수많은 학교 학생들의 실력을 완벽히 줄세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일치한다면 굳이 내신 성적을 사용해야 할 이유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고등학교의 수준으로 보정하려는 시도에서도 동일합니다. 고등학교의 수준이라는 것을 어떤 지표를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요? 혹시나 대학 학점으로 판단하려고 한다면 잘못된 시도입니다. 이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실력과 새로 입학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실력이 일치한다고 보기도 힙듭니다. 어떻게든 수준을 판단했다고 가정해도 그 모든 학생들의 실력을 완벽히 줄세우는건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어떤 학생은 본연의 실력보다 높게 평가될 것이고, 어떤 학생은 낮게 평가되겠지요. 따라서 원래 붙을 만한 학생이 떨어지고, 떨어질 만한 학생이 붙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므로 내신 성적에 근간을 둔 학생부 교과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은 명백히 '잘못된' 전형입니다.
2. 명확한 기준의 부재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가장 말이 많이 나오는 대목이지요. 기존의 정량적이고 객관화된 지표를 사용하지 않고, 정성적으로 평가한다는 취지인데 정성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입학처나 교수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객관적일 수가 없으며,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쉽겠지요.
물론, 꼭 비리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명확한 평가기준과 그에 따라 수치화된 점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입학처나 교수의 주관에 의해 누군가는 실제보다 높게, 누군가는 실제보다 낮게 받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원래 붙을 만한 학생이 떨어지고, 떨어질 만한 학생이 붙는 현상도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평점을 하는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평가에 대한 신뢰도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명확한 평가기준이 존재한다면 그에 따라 평점한 각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해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학생부 종합 전형은 이것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며, 존재한다면 공개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부 종합 전형의 평가에 대한 신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3. 재도전 기회 결여
사실상 이는 내신 성적에 의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3년간 쌓아온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전형의 특성상, 내신 성적이 이미 좋지 않다면 재도전을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내신 성적이 좋지 않다고 고등학교를 처음부터 다시 다녀서 내신 성적을 다시 산출할 수도 없고, 심지어 내신 과목 중 일부를 재수강해서 구멍난 과목을 회복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즉, 재도전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기회가 박탈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4. 기회의 불균형
학생부 종합 전형 중 일부는 교사 또는 학교장 등의 추천서를 필요로 합니다. 보통은 각 고등학교당 추천서의 수에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즉, 아무리 특정 고등학교에 우수한 인재가 많다 하더라도 그 모든 학생들을 추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 고등학교에 a 학생과 b 학생이, C 고등학교에 c 학생이 있고, 객관적으로 실력을 매겼을 때 a>b>c라고 합시다. 전국에 대학은 D 대학 밖에 없고, D 대학의 학교장 추천 전형은 1장씩만 쓸 수 있다고 하면, 당연히 A에서는 a를, C에서는 c를 추천하겠지요. 만약 a와 c가 합격을 했다면, b보다 실력이 좋지 않은 c가 합격하고 b는 써보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추천서 등에 의한 기회의 박탈로 인해 붙을 만한 학생이 떨어지고, 떨어질 만한 학생이 붙게 됩니다. 이에 따라 추천서 수가 제한된 입시전형 또한 잘못된 전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 주장에 대한 근거의 핵심은 형평성과 재도전 가능성으로 압축가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살펴볼 때, 수능 중심의 전형들은 위 문제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을 응시하고 명확한 평가 기준(객관식)이 존재하며, 1년 후에 다시 응시할 수도 있으며 특정한 집단에 자격이 제한되어 있지도 않지요. 선택 과목의 유불리 정도가 문제시되는데, 이는 선택 과목 제도를 없애거나 선택 과목에 따라 모집을 따로 한다면 깔끔하게 해결이 됩니다.
그렇다면, 학생부 전형이 아닌 다른 수시 전형은 어떨까요? 논술 전형의 경우에는 수능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을 응시하고 명확한 평가 기준(인문논술은 모르겠으나, 이과 논술은 채점 기준이 명확함)이 존재하며, 1년 후에 다시 응시할 수도 있으며 특정한 집단에 자격이 제한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채점 기준만 공개한다면 이 또한 매우 괜찮은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기자 전형은 대학마다 기준이 다양하다보니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공통된 지표(구술고사, 공인어학성적, 전국단위 혹은 세계단위 경시대회 등)를 사용한 후, 명확한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내신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나름 합리적인 전형이 될 여지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학생부 전형은 내신 성적에 근간을 두었기 때문에 아무리 명확한 기준을 내놓고 추천 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이들을 객관적이게끔 개선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핵심적인 것은 수능이나 여타 전형으로 간 학생이 학생부 전형으로 입학한 사람보다 우월하냐 열등하냐가 아닙니다. 똑같이 학생부 전형에 지원한 사람들 간에 누가 더 우수한 지를 확실히 가리기가 힘들고, 이에 따라 역전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므로 '합격한 사람이 확실히 붙을 만한 실력이 있는가'와 '불합격한 사람이 확실히 실력이 부족한 것인가'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항목들을 근거로 저는 학생부를 근간으로 선발하는 학생부 전형은 명백히 잘못된 전형이며,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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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문
핵사이다
맞습니다. 사실 고려대 4.1과 연세대 3.9는 누가 잘하는지 평가할 수 없죠
사실 굳이 따지면 고려대 4.1과 고려대 3.9도 누가 잘하는지 확실히 평가하기는 힘들긴 합니다. 강의마다 학점을 매기는 방식이나 로드의 차이도 있다보니 학점을 잘 주거나 편한 강의 위주로 들으면 실력에 비해 학점이 높게 나올 수 있지요.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잘하신 갓노운님 이렇게 기만하시네요...
?
다시보니 명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