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글을 새기다
게시글 주소: https://h.orbi.kr/00016251967
시침은 어느새 5시를 향해간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오늘 밤도 휴대폰에 나를 가둔다.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은 바보상자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한 걸 반추해본다.
오늘날 교과서에는 "휴대전화는 바보상자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기술의 결정체라 여긴 물건에 스스로 가두어지는 꼴이란.
자승자박이란 나를 두고 만든 말이 아닐까, 씁쓸한 실소를 지어본다.
밤낮이 바뀐 나에게, 밤에 잠이란 사치에 불가하다.
그리고 밤낮이 바뀐 이유가 오늘날의 나태함이란 사실은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하지만, 밤이 낮이 되지는 못했다. 나에겐 늘 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밤이 끝나지 않음에 안주하는 꼴. 참으로 꼴불견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난 1년 대학 생활을 곱씹어 본다.
재밌는 1년이었다.
많은 사건과 많은 사람들.
스스로 부족함에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내기도 했었다.
스스로 정의라 여기며, 또 다른 부정의를 행하지는 않았을까.
명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을, 스스로 깨달음을 준 강의도 있었고,
돈과 시간을 쓰며, 이런 강의에 내 몸을 맡기는 게 참으로 어이없는 강의도 있었다.
수많은 대외활동
그리고 나의 삶
하나 확실한 건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
남이 강요한 길이 아닌, 내가 택한 길을 걸어갔기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단 하나의 예외 "나"란 존재는 제외하고.
그런데, 어쩌다 나는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있을까.
휴식이란 미명 속에서, 봄날 아래 겨울잠을 찾지 않는가.
에타(강의평 어플리케이션)에서 지난 겨울학기 교수님을 검색해본다.
겨울학기에 들은 김교수님은 어쩌면, 내가 대학을 떠나기 전 들은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강의는 나에게 명강으로 남을 것이다.
수강평을 읽어본다.
혹평과 호평.
좋은 강의란 무엇일까.
학점을 잘 주는 강의일까, 수업이 쉬운 강의일까.
상반된 수강평 속에 나의 대학 수업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적어도 나에겐, 생각하는 수업이 명강이었다.
전공의 임교수님. 통계의 백교수님. 영어의 K교수님. 그리고 기현사의 김교수님.
1년 이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네 분의 명강을 들었다면, 어쩌면 이건 충분한 행운이 아닐까.
기약 없는 이별 끝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도 또 다른 명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있을까.
삼수란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기댈 곳 없이 상경하여, 고시원에서 꼬박꼬박 6시에 일어나고 새벽 1시에 잠든 나는 어디로 갔을까.
오늘 하루가 어제보다 나아짐에 없음에 분노해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수능이 전부가 아니고, 수능 이후에 더 큰 시험들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사회란 시험 속에, 왜 나는 성실하지 못한가.
실소를 그치지 못한다.
에타에 김교수님 성함을 검색해본다.
이번 학기에도 몇 가지 수업이 개설되었다.
수업계획서를 읽어본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저 교재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이번 학기엔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계절 학기 수업에 김교수님께서는 수업중 오늘날 도시의 발전을 이야기하셨다.
도시를 전공으로 배우는 나는, 수업을 마치고 쪼르르 교수님을 쫓아 책 두 권을 소개해 드렸다.
교수님의 관점을 지지하는 책 한 권과, 교수님의 관점과 상반되는 책.
명강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드릴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는 지식을 나눠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지식을 나누는 건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는 않을 거니 말이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그 날의 수업은 끝이 났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그 두 권의 책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교수님의 교재로 말이다.
교수님은 신학과 교수님이다.
미션 스쿨인 Y대에서, 교수님은 그냥 들어야 하는 수업 중 하나를 맡았을 뿐이다.
"종교" 과목으로.
하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고, 나에게 새로운 삶의 통찰을 주었다.
그리고 그 통찰과 가르침은 수업이 끝난, 지금 새벽에도 찾아왔다.
진정한 지성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시고 교수님은 읽어 보신 것이다.
600쪽과 500쪽이 되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을 교수님은 기억해주시고 공부하셨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새벽에 맞이하게 됐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가.
교육 사업을 한다는 외침을 하지만, 나는 왜 정진하지 않는가.
한 평생 학문을 배워온 교수조차 학생의 말 하나를 잊지 않고 더 배워 나가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바보상자에 가두고만 있는가.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대학이란 자격증을 위해 지난 5년을 독하게 살아온 나다.
학원 과외 도움없이 이 자리까지 온게 바로 나다.
나의 삶
하나 확실한 건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
남이 강요한 길이 아닌, 내가 택한 길을 걸어갔기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단 하나의 예외 "나"란 존재는 제외하고.
겨울잠은 끝났다.
새로운 봄이 나를 기다린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겨울만 되면 목이 간지러움… 목 안이라고 해야하나? 성대? 너무 간지러워서 입에 손...
-
난 화1이 캐리해줘서 현 대학 왔는데 그 이후 화1을 보니 이건 뭐..
-
어떻기 쓰느냐가 중요한거지
-
정석민 박광일 심찬우 국어를 국어로 바라보는 샘들임 이분들 열심히 듣다보면 자기가...
-
이거 이상한거 맞죠..? 뭔가 하나는 틀린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되나요
-
가천대 의대 논술 이번주 일요일 맞는거죠? 토요일이라 그러는 분이 있어서
-
안녕하세요. CRUX 차수영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잘 쉬고 계신지요. 오늘은 다소...
-
이맘 때 학과 고를 때 도움 되는 이야기일까 하여 적어봅니다. 인어문 학과 보시면...
-
어떡하지 다른 건 재미가 없어 여기서 시던잖은 수능 얘기하는게 젤 맘이 편해
-
물리/화학 백분위는 1,2 다 터져있는데 2는 그나마 깡표라도 좀 나아서 이득...
-
씨름 10년차 아마추어 100명 중 1등하기 씨름 1년차 윤성빈 이기기 난 전자가...
-
9평 수능 100점입니다 평가원만큼 깔끔하고 명확한 논리와 선지가 없음
-
메가 합격예측 0
메가에서 현재 80프로정도 뜨면 실채점 뜨더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
-
원투는 +3점 투투는 +5점 가산점 주는데 이미 하던 생1 버리고 노베 화2 시작할...
-
ㅈㄱㄴ
-
저는 문학은 몰라도 비문학은 무조건 독학하면서 독해력 향상시키는게 실력 향상하는...
-
거긴 더 빡세지 않나 이미 의대 걸어놓은 애들이 바글바글 할텐데 응 망해도 의대야 하는 마인드
-
jpop 추천해주세요 18
유명하지 않은 것도 괜찮으니 추천 부탁드립니다..
-
화2 주문 완 6
50점 한자리 예약이요~
-
근데 올해는 기출에 매진하면 잘볼수 있었다가 맞나요? 3
그냥 궁금하네요... 이번수능 잘보신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
종이가 좋은뎅
-
인생 ㅠㅠ이
-
25만 질러서 원기베리 4셋 깠는데 까만펫? 자석펫 재료 8개가 나왔음 그거 다...
-
얼버기 6
오늘도힘차고좋은아침
-
컷 내려가고 나만 점수 그대로일텐데 아쉽다
-
꿈돌이 만나러 가는 중이랍니당 허헣
-
내년에도 의대생 누워야되면 강제 +1수라서
-
강원의vs 연원의 어디가 더 낫나요?
-
6월 21211 9월 22122 수능 12221(가채점) 셋다 비슷하구만
-
키미오 사가시 하지메타요
-
님드라 이거 봐 13
-
수시납치 6
수능 성적이 백분위로 언매 97 미적 85 영어 2 생명 89 지구 100인데...
-
여 김장겸, '나무위키 투명화법' 발의…"국내법 적용받게 해야" 3
[서울=뉴시스] 한재혁 기자 =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일정 규모 이상 해외...
-
지금 연미의 건국의 이런 곳 텅텅 빔 ㅋㅋㅋ 지금은 다들 행복회로를 돌리는 시기라는 것..
-
음 수능 끝나고 논술 준비하면서 할 거 없어서 2511 지구과학 오답률 보면서...
-
오르비 유저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귀찮..
-
댓글보면 가슴이 답답해짐 PC방에서 외국인이랑 싸우는 기분
-
말을 하면 된다
-
좋은 아침? 10
-
둘 다 합격하면 어디가세요?
-
아는애가 투움바파스타 먹고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는데 그렇게맛있음? 양이 많은편인가요...
-
서울권도 그럼?
-
국어가 망해서 ㅜ 108 132 3 64 62 면 세종대 낮공 가능한가요 ㅜㅜ
-
넷다 존예..
-
문디컬 도전 생각중인데 원래 동아시아사는 일단 할 생각이였고 배경지식 어느정도 있는...
-
입결 ㄴㄴ 그냥 미래나 병원 전망 등등 으로좋은 순위요.. 경한이 1등일거고.....
-
과외알바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매뉴얼&팁입니다. 미리 하나 장만해두세요~~...
-
입결은 반영비따라 매해 바껴서... 그냥 병원이나 선후배 전통같은거만 보면요 당연히...
인공의 날개가 있다면 못이라도 박고 날고 싶네요
ㄱㅎㅊ 교수님 ㄹㅇ 참교수
ㄹㅇ.. 참교수님이시네여
좋은 분이시네요
저 쪽지가안보내져여
아... 이런
제가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다시 말씀드리지만 글쓴이님과 흑염룡님과 무관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카톡 itsmith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꼭 사례하겠습니다!
이렇게 까지 부탁드리는 이유는 제가 그 만큼 이 분야(수험 생활과 심리 상태)에 관심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와...작성자님 필력이 대단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