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갈까요? [414522] · MS 2012 · 쪽지

2014-01-26 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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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미만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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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5&aid=0000000620

서울대 의대·법대 이어 경희대 한의대까지 섭렵하는 최용구

“의학, 법학, 한의학… 학문에 경계가 있나요? 전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겁니다”

지난 2월 7일 경희대가 발표한 2006학년도 편입학생 명부에는 독특한 이력의 사나이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만학도’ 최용구씨(39)가 그 주인공. 서울대 의대와 법대를 거쳐 경희대 한의대까지, 그는 남들이 한 곳도 가기 힘들다는 명문대를 무려 세 번이나 합격했다.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요, 일상이라는 최용구씨의 ‘튀는’ 인생과 만난다.

39세의 미혼남, 또 다시 대학에 가다

그저 남들처럼만 살았더라면 지금쯤 의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법조계 입문을 꿈꾸며 야심차게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 사내는 이상하리만치 ‘보장된 미래’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보유 중인 명문대 졸업장만 두 개. 하지만 ‘못말리는 학구열’은 그를 또 다시 ‘캠퍼스’로 밀어 넣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가 좋고 재미있으니까.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서울대 의대와 법대를 거쳐 올해 경희대 한의대에 편입학한 최용구씨(39). 어려서부터 공부가 좋았다. 살면서 부모로부터 “공부해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들어 봤다는 독특한 사내다. 오히려 부모가 ‘책’만 파고드는 아들을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머리가 좋은데다 공부에 취미까지 남달랐으니 성적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는 서울대 의대 입학 당시 치른 대입학력고사에서 경기도 내 학생 중 최고 득점을 기록해 ‘수재’로 언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고 3 때 진로를 결정하며 의대를 선택한 건 다분히 형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삼형제 중 막내인데 바로 윗 형이 당시 서울대 의대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형의 입을 통해 의대생들의 생활상을 전해들으며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87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 1993년 2월 졸업장을 거머쥔 그는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병원 인턴 과정까지 밟으며 무려 13년을 ‘예비 의사’로 살았다. 하지만 이후 그가 보인 행동은 뜻밖이 아닐 수 없다. ‘병원’으로 가야 할 사람이 ‘서울대 법대’에 편입학 신청서를 제출하며 주위를 놀래킨 것. 누가 봐도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예과 2년, 본과 4년까지 학부만 무려 6년에다 인턴, 레지던트, 군대까지 마치자면 13~14년이 훌쩍 지나버리게 마련. 하지만 그 힘든 과정 끝에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지옥 속에서 참고 견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최용구씨의 경우에는 열매는 맛보지도 못하고 10여 년이란 긴 세월을 구슬땀만 흘린 셈이니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당시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느냐”는 물음에 최용구씨는 “크게 실망하셨을 부모님께는 지금도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내 자신을 위해선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대에 다닐 때부터 법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의학 공부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전공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당시엔 시도해볼 생각도 못했죠. 법학에 제대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있다 보니…. 법이라는 게 태초부터의 지혜가 낙엽처럼 한겹 한겹 쌓여 만들어진 거잖아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말 재미나더군요. 대학에 진학해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그때 생겼어요.”

향후 10년간 한의학 공부해 레지던트까지 마칠 계획

남들은 한 곳도 가기 힘들다는 명문대를 무려 세 곳이나 섭렵하고 나섰으니 과히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영역이 전혀 다른 학문을 연거푸 넘나드는 그의 기이함만큼은 솔직히 이해가 쉽지 않았다.

“남들은 전혀 다른 학문 세계를 왔다갔다 한다고 말하지만 전 의학과 법학, 그리고 한의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왜 법학에서도 의학적 근거가 자주 거론되고, 의학에서도 의료 사고시 손해배상 등과 같은 법률적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또 양의학을 공부하면서 미지의 분야가 아직 많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양의학으로 고쳐지지 않던 병이 한의학으로 치료가 되는 것을 보고 한의학에 본격적인 호기심을 갖게 됐죠. 평소 케이블 TV를 통해 법정 재판을 생중계해주는 미국의 ‘Court TV’를 즐겨 보는데 미국의 법정에는 거의 매 재판마다 의사가 등장하고, 변호사들 또한 의학 지식이 상당해 보이더군요. 이처럼 의학과 법학, 한의학에는 접점이 있고, 제 생각에 그 접점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거라 생각합니다. “

사실 법대를 졸업한 후에는 취직 생각도 전혀 없진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 레지던트로 다시 들어가 의사가 될까, 신문사에 전문기자로 취직을 해볼까 등.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한의학 공부에 대한 미련은 그를 또 한 번 움직였고 기대도 않다던 상황에 입학 통지서까지 받게 되자 그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의대 공부 또한 의대 못지않다. 정규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고 해도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치고 한의사가 되려면 장장 10년을 더 책 속에 머리를 묻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최용구씨는 “한의학을 공부해 가능하면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치고 싶다”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양방과 한방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환자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최용구씨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 앞으로 10년 후면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 된다. 그렇다면 지천명의 나이에 첫 직장을 갖겠다는 말인데 한마디로 ‘기인’도 이런 ‘기인’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그에게도 두려움이 전혀 없진 않다. 의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가정까지 꾸리고 산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까지 미혼에다 부모와 형들로부터 경제적 도움까지 받고 사는 형편. 하지만 그는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위기 상황을 극복해나간다. 그리고 주문을 왼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재미가 있겠어?”라고 말이다.

요즘 들어 그에겐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엄청난 액수의 학비 마련이 그것.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얼마 전 스무살 무렵 잠시 해보고는 하지 않았던 아르바이트 전선에까지 다시 뛰어들었다. 모 제약회사로부터 일감을 따 일주일 밤낮 없이 번역을 해 그가 받은 돈은 5백6만원. “조금은 남을 줄 알았는데 등록금이 글쎄 5백1만원이나 되더라”라며 졸업까지의 6년을 걱정하는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돈 걱정 않고 맘 편히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것.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되다는 최용구씨에겐 인생의 목표가 따로 없다. 그냥 매순간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꿈을 좇아 최선을 다하는 삶. 그는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고, 행복은 성적순도 재산순도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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