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Y한 독도바다 [1005719] · MS 2020 · 쪽지

2022-06-07 08:30:36
조회수 7,981

오늘의 역사 잡지식 56 : 예송논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시글 주소: https://h.orbi.kr/00057017304

오랜만입니다

시험기간만 되면 다른 일이 생각나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온 김에 잡지식이나 하나

오늘도 뭔가 논쟁적일 수도?



예송논쟁은 누구나 알고 계실 겁니다

고등학교 한국사를 조금만 공부하셨더라도 말이죠

(물론 수능 한국사에 자주 나오는 주제는 아닙니다만...)


예송논쟁은 으레 '상복을 얼마나 입을 것인가?'하는 논쟁으로 알려져 있죠 그게 맞기도 하고요

그때문에 많이들 '성리학자들이 민생 걱정은 안 하고 쓸데없는 공론만 펼친다'라고 생각하구요

이는 예송논쟁이 벌어진 현종 시기에 전대미문의 기근이 닥쳤다는 점과

성리학 내지 유교사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주제와는 먼 얘기지만, 현종 대의 기근(경신대기근) 때는 중앙 정치의 유력 인물들이 죽어 나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송논쟁을 배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면, 단지 대비가 상복 몇 년 입냐 가지고 무의미한 싸움을 한 거라면

한국사 교과서에 어느 정도의 대목을 차지할 이유도 없겠죠


예송논쟁을 이해하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단순한 상복 논쟁 속에 효종 이후 조선 왕가의 정통성 문제,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성리학적 사상 논쟁이 섞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예송논쟁은 서인과 남인이 벌인 정쟁입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정당 간의 알력 싸움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이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정당이 후에 조선의 정국을 주도하며 주요 정책을 펼쳐나가겠죠.

포인트는 여기입니다.

예송논쟁은 조선 후기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은 성리학자들이지만 서인과 남인이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성은 다릅니다.

서인들이 미디어에서 항상 부정적으로 묘사되긴 합니다만, 서인은 성립 이래 온건 노선을 유지해 왔고, 그들이 내세운 최종 목표는 신분제 해체를 바탕으로 한 자영농 육성과 그로 인한 민생 안정에 있었어요.

반면 남인은 성립 이래(동인 때부터) 강경 노선을 유지해 왔고, 그들이 내세운 최종 목표는 신분제의 공고화와 공고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철저한 분배에 있었구요. 이때문에 왕권의 절대성을 철저히 내세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남인을 등용하고자 한 왕들은 대개 왕권 강화와 관련이 있죠(대표적으로 정조가 있습니다)


비록 남인이 확고히 정권을 잡은 시기는 짧았고, 그렇기에 그들의 목표가 실현된 바는 적지만

(사실 강경파의 노선이 실제에 반영되는 경우가 적기도 합니다)

서인은 비교적 오랫동안 정권을 잡았고, 그들이 펼친 정책은 그들의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균역법과 노비제 해체가 서인이 정국을 장악한 시기에 있었던 일인데,

균역법은 민생 안정을 위해 군포 부담을 줄여주는 거고, 노비제 해체는 말할 것도 없죠.


1차 예송논쟁 때는 서인이 승리, 2차 예송논쟁 때는 남인이 승리합니다.

현종은 무승부를 통해 서인이 내세우는 민생 안정의 방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남인이 내세운 절대 왕권을 도모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여기는 저의 해석)


숙종 대의 환국을 거치며 정국은 서인에게 완전히 넘어가는데,

그 이후로 앞서 말했던 서인들의 주요 정책이 실제에 반영되기 시작하죠

어찌된 일인지 남인이 중앙 정치에서 절멸하는 정조 사후부터 왕권이 급격히 쇠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여기도 저의 해석, 좀 비약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요 부분은 세도정치의 맥락도 들어가는지라 근데 세도가문도 다 서인 출신이죠 이때면 노론/소론으로 갈린 후의 노론이지만)


아무튼,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예송논쟁을 단순히 정치적 이벤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정치인들의 세력 다툼이 실제 민생에 반영되는 게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죠

역사 속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인데, 다를 거 없습니다


[오늘의 역사 잡지식 1 : 서동요와 선화공주] https://orbi.kr/00037641895

[오늘의 역사 잡지식 2 : 축성의 달인 가토 기요마사] https://orbi.kr/00037667479

[오늘의 역사 잡지식 3 : 진평왕의 원대한 꿈] https://orbi.kr/00037964036

[오늘의 역사 잡지식 4 : 앙리 4세의 유언] https://orbi.kr/00037996176

[오늘의 역사 잡지식 5 : 신항로 개척과 임진왜란] https://orbi.kr/00038174584

[오늘의 역사 잡지식 6 : 일기토] https://orbi.kr/00038313181

[오늘의 역사 잡지식 7 : 라스카사스 - 반식민운동과 노예 장려] https://orbi.kr/00038777847

[오늘의 역사 잡지식 8 : 동방의 예루살렘, 한국의 모스크바] https://orbi.kr/00039353742

[오늘의 역사 잡지식 9 : 마라톤 전투의 뒷이야기] https://orbi.kr/00039446583

[오늘의 역사 잡지식 10 : 투트모세 4세의 스핑크스 발굴] https://orbi.kr/00039547389

[오늘의 역사 잡지식 11 : 천관우-한국사학계의 먼치킨] https://orbi.kr/00039562829

[오늘의 역사 잡지식 12 : 연천 전곡리 유적] https://orbi.kr/00039716742

[오늘의 역사 잡지식 13 : 고대 문자의 보존] https://orbi.kr/00039737161

[오늘의 역사 잡지식 14 : 쿠릴타이=만장일치?] https://orbi.kr/00039810673

[오늘의 역사 잡지식 15 : 러시아의 대머리 징크스] https://orbi.kr/00039858565

[오늘의 역사 잡지식 16 : 데카르트를 죽음으로 이끈 여왕] https://orbi.kr/00039928669

[오늘의 역사 잡지식 17 : 권력욕의 화신 위안스카이] https://orbi.kr/00040043207

[오늘의 역사 잡지식 18 : 간단한 기년법 정리] https://orbi.kr/00040188677

[오늘의 역사 잡지식 19 : 4대 문명이라는 허상?] https://orbi.kr/00040209542

[오늘의 역사 잡지식 20 : 토머스 제퍼슨의 토루 발굴] https://orbi.kr/00040310400

[오늘의 역사 잡지식 21 : 그들이 생각한 흑사병의 원인] https://orbi.kr/00040332776

[오늘의 역사 잡지식 22 : 홍무제랑 이성계 사돈 될 뻔한 썰] https://orbi.kr/00040410602

[오늘의 역사 잡지식 23 : 영정법의 실효성] https://orbi.kr/00040475139

[오늘의 역사 잡지식 24 : 상상도 못한 이유로 종결된 병자호란] https://orbi.kr/00040477593

[오늘의 역사 잡지식 25 : 상나라의 청동 기술] https://orbi.kr/00040567409

[오늘의 역사 잡지식 26 : 삼년산성의 우주방어] https://orbi.kr/00040800841

[오늘의 역사 잡지식 27 : 익산이 백제의 수도?] https://orbi.kr/00040823486

[오늘의 역사 잡지식 28 : who is 소쌍] https://orbi.kr/00040830251

[오늘의 역사 잡지식 29 : 석촌동의 지명 유래] https://orbi.kr/00040841097

[오늘의 역사 잡지식 30 : 광개토왕비(1) 재발견] https://orbi.kr/00040874707

[오늘의 역사 잡지식 31 : 광개토왕비(2) 신묘년조 발견] https://orbi.kr/00040947507

[오늘의 역사 잡지식 32 : 광개토왕비(3) 넣을까 말까 넣을까 말까 넣넣넣넣] https://orbi.kr/00040958717

[오늘의 역사 잡지식 33 : 쌍팔년도] https://orbi.kr/00040959530

[오늘의 역사 잡지식 34 : 광개토왕비(4) 여러분 이거 다 조작인 거 아시죠?] https://orbi.kr/00040970430

[오늘의 역사 잡지식 35 : 광개토왕비(5)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 https://orbi.kr/00040997516

[오늘의 역사 잡지식 36 : 발해 왕사 미스터리] https://orbi.kr/00041005448

[오늘의 역사 잡지식 37 : 도조 히데키의 마지막 작전] https://orbi.kr/00041049555

[오늘의 역사 잡지식 38 : 수상한 반란] https://orbi.kr/00041114108

[오늘의 역사 잡지식 39 : 숨겨진 전쟁, 2차 여요전쟁] https://orbi.kr/00041175117

[오늘의 역사 잡지식 40 : 중국에서 발견된 단군신화?] https://orbi.kr/00041200103

[오늘의 역사 잡지식 41 : 홉스 왕립학회 짤린 썰] https://orbi.kr/00041234691

[오늘의 역사 잡지식 42 : 이사부의 성씨] https://orbi.kr/00041392205

[오늘의 역사 잡지식 43 : 대통령이 된 과학자] https://orbi.kr/00041412750

[오늘의 역사 잡지식 44 : 고구려의 국성은 해씨?] https://orbi.kr/00041584826

[오늘의 역사 잡지식 45 : 가톨릭 두쪽나다, 아니 세쪽?] https://orbi.kr/00041754585

[오늘의 역사 잡지식 46 : 이 성유물을 거짓이다!] https://orbi.kr/00041867048

[오늘의 역사 잡지식 47 : 슬픈 변경] https://orbi.kr/00041921792

[오늘의 역사 잡지식 48 : 사냥꾼인가 처리반인가] https://orbi.kr/00041987200

[오늘의 역사 잡지식 49 : 장수의 비결?] https://orbi.kr/00042601633

[오늘의 역사 잡지식 50 : 광해군의 중립 외교?] https://orbi.kr/00043677568

[오늘의 역사 잡지식 51 : 프리드리히의 비밀] https://orbi.kr/00054442499

[오늘의 역사 잡지식 52 : 원쑤가 된 북한과 중국] https://orbi.kr/00054997784

[오늘의 역사 잡지식 53 : 흔한 국왕의 드립력] https://orbi.kr/00056394074]

[오늘의 역사 잡지식 54 : 한글 창제 이전의 한국어] ]https://orbi.kr/00056519702

[오늘의 역사 잡지식 55 : 제망매가부터 무량수까지] https://orbi.kr/00056714818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Festiva · 864732 · 22/06/07 09:16 · MS 2018

  • 일어나니 점심때 · 1024650 · 22/06/07 09:58 · MS 2020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6/07 17:38 · MS 2019

    1. 독도바다님 오랜만이에요! 시험기간에 공하싫 공감합니다 아앍 미술과제싫어 역사교양공부할래...
    2. 뭔가 예송논쟁= 정통성 논쟁. 정쟁 비슷한거. 요렇게는 알고 있었는데, 서인/남인의 노선과 정책방향 이런거는 정말 생각해본적이 없다보니...되게 신선했어요. 하긴 걔네가 인맥만으로 뭉친건 아닐테고 현대의 정당 비스무리하게 뭔가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었겠죠?
    3. 경신대기근 때 중앙의 고위 관리도 죽어나가고 왕실 구성원도 죽어나갔다는 사료 보면 국가의 고위층도 자연재해에 죽어나갔다는 건데, 전근대 시기에 극심한 자연재해가 닥치면 국가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거에는 한계가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엇읍니다

  • EASY한 독도바다 · 1005719 · 22/06/07 19:59 · MS 2020

    1. 와ㅏ아ㅏ아ㅏㅏㅇ 오랜만이에요오

    2. 정당과 완전히 일치시키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정치 집단의 특성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요

    3. 조선은 19세기까지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중국이나 일본도 18세기쯤 해야 절대 빈곤을 벗어난다고 하는데, 둘보다 가난한 조선이 17세기부터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을 리 없죵) 절대 빈곤 국가에서는 생산량이 생존에 직결되는데, 2년 동안이나 생산량이 반토막만도 안 나왔으니 고위층이라고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을 거에요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6/07 20:17 · MS 2019

    인스타 하시는거 열심히 챙겨보고잇읍니다 화이팅이에용
  • EASY한 독도바다 · 1005719 · 22/06/07 20:40 · MS 2020

    세상에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6/07 20:54 · MS 2019

    엇 아시는줄 알앗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