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수정됨) · 쪽지

2020-03-10 1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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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대학(N수)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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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비대학/N수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고생했으니 이제 쉬어라. 모두가 (마음껏) 너를 비웃도록'





by Snu Roman.





"Timing beats speed, Precision beats power"

"타이밍은 스피드를 압도하고 정확도는 힘을 제압한다"


  전 UFC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가 첫 페더급 타이틀 전에서 당시 챔피언이던 ‘폭군’ 조제알도를 이기고 한 말이다.


  아름다운 말이다. 스피드와 힘은 타고나는 것인데 알도 같이 스피드와 힘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저 말은 맥그리거에게만 쉬운 말이다. 맥그리거처럼 페더급 전체에서 가장 긴 리치를 갖고 있고 전형적인 카운터형 복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저 말은 팔이 짧은 파이터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난 살면서 많은 것을 시도했다. 보잘 것 없지만 대학 시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 건 감췄다. 드러내봐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마음 아파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대부분은 동정, 안쓰러움이다. 1등이 10000등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10000등이 뭐 어때. 다 잘 될 거야"는 솔직히 말해 기만이다. 저런 위로는 날 더 괴롭게 했다. 


  아픔을 드러내는 게 유행인 적이 있었다. 아파요. 같이 울어주세요. 원하는 대학(직장)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수능(LEET) 점수가 안 나왔어요.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한 번 더 일어서면 된단다. 아무도 너를 비웃지 않을 거란다. 그 누구도 지금의 결과로 너를 무시하지 않을 거란다. 간판 따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내가 10여년 전 수능을 망치고 생각대로 살지 않고 사는대로 숨을 쉴 때, 내게 위로를 건넸던 많은 책에 나온 문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고학력, 고스펙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청춘은 아파도 된다던 그 분은 서울대 교수였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던 승려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미국인이었다. 


  물론 유명 자기계발서 작가 중 특별한 이력 없이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탐독하며 한 가지는 확인했다. 

그 자기계발서로 성공한 사람은 그걸 쓴 자기자신이었다. 




“확실히 성공하는 공부법”을 쓴 저자는 확실히 책은 잘 팔았다. 




 아픈 게 씻겨버리고 싶은 쓰레기 같은 기억으로 남을지 청춘으로 추억될 수 있는지는 현재의 자기 처지에 달려 있다.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활약하며 바쁘게 살던 이에게 휴식은 꽤 많은 것을 주지만 원래 멈춰있던 자가 또 멈춰봐야 무엇이 보이겠는가.


  대학원에 진학해 길 없는 길을 걷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역시나 되는 일이 없었다. 익숙지 않은 외국어로 의사표현하기도 바쁜데 현지인끼리의 날선 디베이트에 외국인인 내가 쉽게 끼어들기 어려웠고 학부시절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내가 교수의 질문을 받을까 떨었다. 누군가의 농담으로 다같이 웃을 때 따라 웃을지 고민하던 순간순간들이 징그러웠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도 시인 나르테스크의 구절을 봤다. 




"고생했으니 이제 쉬어라.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이 말은 나의 많은 걸 바꿨다.


  저마다 힘든 사정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또 그보다 많은 질타와 동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고생했으니 주저앉아도 된다(세련된 문체로 쉬어도 된다)는 말은 모두가 너를 비웃을 수도 있다는 말이 생략됐다. 


  누구나 은밀하게 남의 불행을 즐기고 시끄럽게 남의 상처를 위로한다. 

  그러니, 후배여러분은 그런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중심을 잡았으면 좋겠다.

 

  파리 루브르에 갔을 때, 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며 "이게 뭐지? 그렇게 좋은가?"하고

아무리 쳐다봤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어릴적 새롭게 나왔던 ‘헌터헌터 신간 표지’이 주는 설렘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예술적 감수성이 문제된 적은 없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론 지쳐 쓰러질 테고 그 땐 쉬어도 된다. 

귀찮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탓해도 된다. 그것 때문이니. 


  다만, 모두가 너를 비웃을 것이다. 


  그게 싫으면 무얼해야 할지는 제일 아는 것 역시 바로 당신이다. 


  나라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열심히 하세요~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비추어지고 싶지 않겠느냐만,

 그 비용을 감수하고 쓰는 것이다. 


  꿈은 스스로를 ‘나이브’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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