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함 [603132] · MS 2015 · 쪽지

2016-09-26 0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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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안와서 써보는 첫사랑한테 어깨내준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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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에 은근 풀어놓은 신상정보가 많아서 더 털면 진짜 인생 털릴것 같아서 자세하겐 안풀겠음.
그때가 입터는 재미를 모르던 때였으니까 아마 고등학교 1,2학년 때 즈음이었던것 같음. 초등학교때부터 꾸준히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는 탓에 첫사랑이라고 부를만한 여자가 있을리가 만무했고, 그나마 정착하기 시작한 중학생 때가 되었을때는 이미 나는 말없고 사교성 제로인 무뚝뚝의 대명사가 되어있었음. 아니 사교성이 좀 없었다 뿐이지 친구랑 있을때 기억이 거의다 나만 지껄이던 거였던걸 보면 입터는 기질은 그때도 존나 대단했던거 같음.

암튼. 중학교때 즈음에는 나는 여자따위는 관심 없는 존나 고독하고 멋있는 시크남인 것이다. 라는 특유의 중2병스러운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좋아했던 사람은 없었음. 그때 당시 롤에 엄청 빠져있었던 탓에 실제로도 여자에 관심둘 세도 없었기도하고. 한번은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편지를 쓰긴 했던거 같은데 잘 기억 안남. 친구들한테 머냐 이거. 어떻게 해야함? 이러고 얘기했는데 끼리끼리 논다고 걔들이 알턱이 없었음. 몰라 병신아 정도의 조언을 받고 끝났음. 그땐 뭔가 나를 좋아해준다는게 신기해서 그애에게 관심을 조금 갖게된거 같긴 한데 기억에 없는거 보면 걍 흐지부지하게 끝난거 같음.

결국 제대로 첫사랑을 만난건 고딩때였음. 존나 취향도 당차게 이미 벌써부터 연하를 눈에 두고 있었는데. 두살 어린 여자애였음. 애가 밝고 여기저기 사교성있게 두루두루 친해지는 애여서 딱 첫눈에 반했음. 아니 사실 처음에 반한건 아닌거 같고, 처음 만났을때 대화를 몇번 하다가, 다음번에 만났을때 엄청 반갑게 인사를 해줘서, 그때 반했던것 같음. 음침함이 과도해서 존나 피부색부터 다크가 뚝뚝 떨어지고, 무뚝뚝함이 마치 고철에 녹이슨 기계와 같은 나에게는 N극 과 S극이 서로 잡아 당기듯이 그애가 끌리는것 처럼 느껴졌음. 여담으로 그때 나는 반대되는 사람들끼리 끌리기 마련이다! 라는 뭔 잦도 안까먹는 논리로 '그애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헤헷!'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딴거 없음 걍 사교성 좋은애가 짱임. 그러니까 원래부터 차도남 스타일의 아우라가 풍기는 간지남이거나 잘생겨서 가만히 있어도 애들이 막 따라붙는 클라스 아니면 대학가서 컨셉잡겠다고 깝치지 마셈.

다시 돌아와서. 당연히, 뭘 어떻게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그냥 그애 주변에서 걍 맴돌기만 하다가 - 대부분 평범남의 첫 짝사랑이 그렇듯이 무슨 위성마냥 열심히 쳐다보기만 했음.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 어쩌다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그걸로 좋았음. 그애가 첫사랑이라는 프레임에 덧씌워지고 나니까 나한테는 범접할 수 없는 그런사람으로 느껴졌었음. 그래서 그애랑 마주치기만 해도 좋았고, 괜히 한마디만 건네봐도 설레고 그랬었음.

그러다가 한때는 밤늦게 단체에서 같이 차를타고 갈일이 생겼음. 무슨 단체인지는 말을 못해주겠고 걍 그때 다들 좀 지쳐있었을 때라고만 말해두겠음. 그래서 대부분 지쳐서 조용해져있었음. 보통 여기서는 누가 하나 뭐라고 얘기하면 피라냐마냥 덥썩 달라붙어서 말에 꼬리를 물고 떠들썩해지기 마련이었는데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아무도 대화의 첫머리를 떼려는 사람이 없었음. 아마도 다들 쓰러져 자고 있었을 거임.
그때였음. 마침 그 애가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딱 어깨에 툭 하고 소리가 났음. 솔직히 말하면 툭소리가 났는지 기억 안남. 그때 어떤기분이었냐면 진짜 오감에 소름이 끼치는 수준. 신경세포부터 말초신경하나 하나가 짜릿 해져서 있는잠 없는잠 싹 달아났음. 분명 차안이었고 어두운 밤이었는데 눈이 맑아지고 낮인것 마냥 밝았음. 진짜 별거 아니긴 한데. 내가 느꼈던 감각중에 현역 수능 당시 다음으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몇안되는 기억임. 스르르하고 그애 머리칼이 쓸려내려오는 소리. 머리칼 한올 한올이 내 어깨에 흘러 내리다가, 톡 하고 살짝 그애 머리랑 내 어깨가 맞닿았을때 그 촉각. 그 상태로 차가 덜컹거리며 나랑 그애가 같이 흔들거리는 알수없는 부양감. 그때 그 소리며 그 느낌이며, 그 향기며, 그 기분이며 다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음. 느낌은 깃털이 살포시 내려앉아있는 느낌이었고 향기는 그 어떤 꽃보다도 달콤하고 싱긋한 향기였으며, 그때 기분은 번개를 맞았어도 그보다 더 짜릿 할수는 없었을 거임. 자는척 하고 눈을 감은다음에 차에 흔들려서 고개가 기울어진것 처럼 그애 쪽으로 나도 고개를 쓸려 보냈음. 마치 애인이라도 된 것 마냥. 그뒤로 얼마안가서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다들 흩어져서 그 기분을 오래 즐기진 못했음.

결말은 다들 예상 가능하겠지만 잘 안됐었음. 고백할 용기도 없었거니와 좀 더 지나서는 그애가 넌 별로야! 티를 너무 내서 애매한 관계로 끝냈음. 하도 짝사랑이 길어지니까 집착이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해서 결국, 애초에 내 좋은 결말로 끝날 수 없었던 첫사랑이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봄.

나중에 어쩌다가 나도 어깨에 기대서 잘 기회가 생겼었는데 개 불편했음. 한편으로는 얼마나 피곤했으면 거기다 기대어서 잤는데 안깨고 잤을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남아있는 첫사랑이 그때만큼은 나에게 기대어 볼 정도의 호감은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달콤하게 상상해보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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